[기자수첩] 거대한 코끼리의 시장 입성이 남긴 숙제

이현종 더넥스트뉴스 기자.

이현종 더넥스트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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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에서 물적분할된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의 청약이 지난 18~19일 시작됐다. 청약증거금만 약 114조원이 몰린 사실상 한국주식시장에 거대 코끼리가 등한한 셈이다.

많은 주식투자자들은 코끼리의 다리라도 만지겠다며 442만4000여건의 청약 참여가 진행됐다. 참여자 수가 많다보니 투자자 1명당 균등 배정으로 받는 물량이 1주에 불과할 정도다.

거대 코끼리에 등장에 투자자들이 흥분하는 이유는 둘로 나눈다. 일단 배터리 사업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다.

전기차 시장이 확대되며 배터리부문의 혜자를 가진 기업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기회라는 판단이다.

또 다른 이유는 ‘따상’(시초가가 공모가의 2배로 형성된 뒤 상한가)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언론과 다양한 증권사 애널 보고서에서 장밋빛 전망에 단 몇 주만 받아도 하루 만에 짭짤한 주가 상승 차익이 사실상 보장되는 보너스를 얻을 수 있는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거대 코끼리의 등장이 한편에서는 불편하다. 평소 기업분할에 호의적이던 일부 증권사에서도 비판적인 리포트를 쏟아내며 거대 코끼리의 등장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다.

비판의 이유도 다양하다. 먼저 비판하는 사람들은 기업의 무분별한 기업 분할을 문제로 꼽고 과정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이유를 든다.

기업분할은 경영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이 취하는 수단 중의 하나지만 기업 오너들만을 고려한 분할이 진행됐다는 비판이다.

실제 기업은 자신의 방향성에 따라 인수합병을 진행하기도 하고 기업의 분할을 통해 성장성을 확인한다. 기업분할에는 인적분할과 물적분할이라는 절차가 있다.

인적분할은 분할된 자회사 지분을 모회사 주주에게 배정하는 방식이지만 물적분할은 분할된 자회사 지분을 모회사가 100% 가진다.

따라서 LG화학에서 물적분할한 LG에너지솔루션은 기존 주주들에게 혜택은 없다. 자회사 주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므로 그 만큼 모회사 주식의 가치가 희석되는 손해만 있다.

모회사는 껍데기만 남으며 그 결과 주가는 하락을 면치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더해진다. 모회사의 기존 주주들은 눈뜨고 코가 베어지는 황당한 경우를 당했다며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반면 모회사와 자회사를 모두 가지고 있는 최대주주는 물적분할로 엄청난 수혜를 보게 된다.

우량 자회사 상장으로 투자자금 모집이 용이해 진다. 거기에 두 회사의 지분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배력 역시 강화되는 혜택이 부여된다. 소액주주를 희생시키고 대주주와 기업이 이득을 취하는 셈이다.

이러한 물적분할의 특혜는 대한민국 시장의 낙후성을 반증한다.

미국과 일본 등 글로벌 선진 주식시장에서는 대체로 소액주주의 권리를 인정한 인적분할을 실시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물적분할을 할 때는 엄격한 규제를 가하고 있다.

미국은 자회사 이사회의 독립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모회사와 자회사의 동시 상장을 허용하지 않는다. 구글이 지주회사인 알파벳을 설립하면서 100% 자회사가 된 것이 대표 사례다.

구글 주식은 모두 알파벳 주식으로 대체되고 구글은 비상장회사로 남으며 기존 주주들의 가치를 지켜줬다. 또 유튜브 등 알파벳 자회사들은 여전히 상장을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최대 통신사인 NTT의 경우가 눈에 띈다. NTT는 지난해 44조원이 넘는 자금을 동원해 자회사 NTT도코모의 지분을 모두 사들여 완전 자회사로 돌린 뒤 상장 폐지시켰다. 대주주만을 고려하지 않고 기존 주주들의 가치를 배려한 셈이다.

거대 코끼리의 등장을 위한 과정의 오류는 참혹한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고물가 탓에 미 연준이 긴축 강도를 높일 것이란 관측이 나오며 가뜩이나 수급이 불안정한 상황에 거대 코끼리가 투자시장의 수급을 빨아드리며 한국 주식시장을 누를 수 있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에 대한 기관 수요예측에서 무려 1경5203조 원의 주문이 몰렸다. 이틀간 일반청약에서 약 114조 원(잠정치)의 청약 증거금이 쏟아져 공모주 청약에 새 역사를 쓴 건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한 종목에 자금이 몰리며 한국 주식시장 전체에는 역효과를 불러오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물적분할로 인한 과정과 결과 모두 결국 일반투자자들에게 악재가 된 셈이다.

다행히 최근 ‘물적분할 후 동시 상장’을 규제하자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대선주자들은 앞다퉈 관련 공약을 내놓으며 소액주주들을 챙기겠다고 장담한다. 거래소에서도 상장 실질심사를 할 때 소액주주와 소통 노력을 했는지를 평가 항목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과정의 오류를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또 정치권에서는 분할상장 시 주식매수청구권과 신주인수권 배정 등을 통해 개인투자자의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입장이다.

분할 상장에 대한 엄격한 심사와 조건을 내걸어 기업의 꼼수를 막겠다는 소식은 반가운 일이다.

이제 우리 경제가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 온 만큼 기업들도 글로벌 수준의 주주 가치를 고려해야할 시점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거대 코끼리가 투자시장을 무분별하게 휘 젖고 다니는 일이 없도록 필요한 족쇄를 채워야 한다.

이현종 더넥스트뉴스 기자 shlee4308@thenex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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