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상장폐지 시즌'이 돌아왔다. 감사보고서 제출 지연부터 감사의견 거절, 횡령 등 경영상의 중대사태 등 증권시장의 신뢰를 훼손한 기업들이 한국거래소의 재판대에 오른다. 주식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지는 시기다. 오죽하면 '3월에는 주식하지 말라'는 말까지 있다.
올해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기업들을 살펴보니 '경영상의 중대사태'가 발생한 곳이 많았다. 특히 최근 상장폐지가 결정된 A사는 명동에서 유명한 기업사냥꾼 김 씨가 사건에 깊게 관여돼 있었다.
김 씨는 무자본 M&A(인수합병)을 통해 상장사의 자금을 횡령하는 기업사냥꾼이다. 그의 이름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금횡령 패턴이 단순하지만 강력해 많은 투자자들이 종잣돈을 잃고 피눈물을 쏟았다.
이번에도 방식은 같았다. 무자본인 김 씨는 A사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명동 사채시장에서 돈을 빌린다. 돈을 빌려 A사의 주식을 대량 매수한 후 A사 주식을 사채업자에게 담보로 잡는다.
주식을 담보로 잡았으니 A사 주가는 인수가보다 높아야 한다. 그래서 김 씨는 자회사 두 곳을 설립해 주가 조작을 시도했다. 이 자회사들의 사업 내용이 참 뜬금없다. A사는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들던 회사인데 자회사 B는 자원 개발을 한다고 나섰다. 얼마 뒤 새로 설립한 자회사 C는 수소차 부품을 생산한다는 보도자료가 나온다.
자회사가 '핫'한 사업에 진출한다는 기사가 나오니 A사 주가가 상승한다. 주가가 오르자 김 씨는 A사 주식을 찔끔찔끔 팔아 대출을 상환한다.
여기까지면 그래도 괜찮다. 다만 여기서부터 김 씨의 진짜 '작전'이 시작된다. 작전에는 앞서 설립해 둔 자회사들이 활용된다.
김 씨는 B사가 광산을 사야하는데 자금이 없다며 A사 내부에 쌓인 현금을 B회사에 대여 형식으로 옮긴다. 또 C사가 만든 수소차 부품이 대기업에 공급될 것이란 기사를 내보내고 A사의 유상증자를 진행한다. 기대에 부푼 주주들은 A사 유상증자에 참여해 자금을 지원한다. 김 씨는 A사가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을 또 C사로 대여한다. A사에 쌓인 300억 원이 순식간에 자회사 B, C사로 흘러간다.
A사는 결국 최대주주 횡령으로 상장폐지가 결정됐다. 상장폐지 결정 후 A사의 주가는 하한가로 직행했다. 주주게시판은 아비규환이다.
실제 상장폐지가 결정된 기업의 재무제표이다. 회사가 대표이사를 포함한 특수관계자들에 291억 원을 빌려줬다. 이 중 회수한 건 99억 원에 불과하다. 특히 특히 대표이사에게 직접 빌려준 자금은 13억 원 중 2000만 원 밖에 회수하지 못했다.
더 답답한건 B, C사는 외부 감사를 받지 않는 소규모 업체라는 점이다. 대여금이 왜 손상처리됐는지 알 방법이 없다는 설명이다. 자회사로 유입된 돈이 사실상 김 씨 주머니로 흘러들어가 배를 불렸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사업 내용이 다른 특수관계자 기업이 과도하게 많거나 최대 주주 또는 특수관계자에게 너무 많은 자금을 대여해주는 기업은 무조건 다시 봐야 한다. 분기·반기·사업보고서의 재무제표 주석에서 대여금 특수관계자를 검색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결국 투자에 대한 손실은 투자자가 떠안게 된다. 기업에 투자하기 전에 위험한 기업을 어떻게 걸러낼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한 시점이다.
백청운 더넥스트뉴스 기자 cccwww07@thenext-news.com